<7월17일 일요일: 사도행전 8-9장>
빌립의 사역을 통해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내용이 등장한다(8장). 여기서 예수님을 이사야서의 고난당하는 종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라(32-35절). 마지막으로 이 단원은 헬라파 유대인 회당에서 기독교를 박해한 중요한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개종하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그는 다소의 사울인데 복음 확장의 다음 두 구면(아시아와 유럽)에서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사울이 처음에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주목하라(8:1, 3). 독자들은 바울이 직접 자신의 개종 이야기를 반복해서 진술하는 두 부분을 미리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경우에 바울은 이방인 선교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역할을 강조한다. 또 다시 9:31이 어떤 식으로 이 단원을 요약하고 마무리 하는지 잘 살펴보라.
<7월18일 월요일: 사도행전 10-12장>
누가는 고넬료의 개종이 매우 중요하므로 두 번에 걸쳐 서술한다(10:1-48, 11:1-18). 이 개종 사건의 중요성은 최초의 이방인이 헬라파 유대인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방인 개종을 꺼려한 베드로를 통해 믿음을 갖게 된 것에 있다. 성령께서 전체 과정을 주도하신다. 예루살렘에서 이 사건에 대해 비난을 받게 되자 베드로는 사건의 전모를 다시 진술한다. 성령의 역사하심 때문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11:17). 예루살렘은 베드로의 보고를 듣고 크게 놀란다. “이방인들까지도”(18절) 복음의 대열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 단원에서 중요한 것은 헬라파 유대인들이 안디옥에 교회를 설립한 것이다(19-30절). 이 교회가 아시아와 유럽에 선교사를 파송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단원을 마무리 하는 베드로의 이야기(12:1-9)는 “그 무엇도 복음을 막을 수 없다”는 모티브를 예시할 뿐만 아니라 복음을 방해한 자의 죽음(12:19-23)을 위한 무대를 마련한다.
<7월19일 화요일: 고린도전서 1-5장>
1-4장의 문제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대응한다. 첫째, 지혜의 문제를 다룬다(1:13-3:4). 여기서 그가 역설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존재를 결정한 모든 것, 즉 십자가에 못 박히신 메시아의 복음과 그들의 부름 받은 것과 바울의 설교로 현재 그들이 내세우는 지혜가 거짓으로 입증된다는 점이다. 둘째(3:5-23) 바울은 종에 불과한 지도자들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이해와 고린도에 있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16-17절)인 교회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는다. 따라서 유한한 존재들을 자랑해서는 안된다(18-23절). 셋째, 바울은 자신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비난에 이렇게 대응한다(4:1-21). 바울은 하나님의 종이므로 그들이 자신을 판단할 권리가 없다.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이 악취를 풍기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호소하고 경고한다.
<7월20일 수요일: 고린도전서 6-8장>
6-8장은 소송문제, 매춘 문제, 결혼에 관한 교훈, 우상 제물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소송문제에 대하여 바울을 이렇게 반응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교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배반한 것이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한 그들의 구속을 확증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 있음에 주목하라(11절).
매춘 문제에 관하여 바울은 이렇게 대응한다. 몸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생각에 반대하고 주님의 부활에 호소하면서 몸의 중요성을 확증한다(14절). 또 성적 결합의 본질이 두 사람을 하나로 연합시키는 것임을 강조한다(15절). 몸은 주님의 성전으로서 주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18-20절).
결혼에 대한 바울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이미 결혼한 부부들(1-7절)에게는 이 문제에 대해 서로 의무를 다하고 결혼 관계를 온전하게 유지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한 원칙(17-24절)은 다음과 같다. 현재 상태 그대로 있으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이 우리의 현재 상황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것 역시 수용할 수 있다.
우상 제물에 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대응한다. 먼저 그는 금지 명령을 내리지 않고, 그들이 사랑보다 지식에 따라 행동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8:1-6)시작한다. 이전에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들(약한 자들) 대부분에게 신은 주관적인 실체였으므로 그들을 다시 시전으로 돌아가게 만들면 망하고 말 것이다.
<7월21일 목요일: 고린도전서 9-11장>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재정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자신의 사도적 권리를 변호한다. 하지만 그는 그 권리를 포기했다(9:1-18). 이어서 시장에서 파는 우상 제물에 대한 자신의 행동이 철저하게 복음 전도를 위한 것임을 밝힌다(9:19-23). 또 그는 자기 훈련의 필요성을 역설한 후에 자신을 긍정적인 모법으로 제시하고(9:24-27), 이스라엘의 부정적인 모범에 근거하여 그들에게 경고한다. 마지막으로 이방 신전에서 우상제물을 먹는 것을 분명하게 금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배 중 수건을 쓰는 문제에 바울은 ㅇ자들이 설령 이 문제와 관련해서 자신의 머리를 드러낼 수 있는 권한이 있을지라도, 주 안에서 여자들과 남자들은 상호 의존적인 존대들이다. 따라서 여자들은 남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전통적인 관습을 유지해야 한다.
성만찬을 두고 일어난 분열에 대해서 바울은, 주의 만찬을 제정할 때 주께서 하신 말씀을 그들에게 상기시키고(23-25절), 그들이 먹고 마실 때, 그리스도의 몸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복이 아니라 심판을 위해 주의 식탁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다(11:27-32). 개별적인 식사는 개별적으로 하되 공동체 식사는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환영해여 한다”(33-34절).
<7월22일 금요일: 고린도전서 12-14장>
당시에 방언을 천사의 말로 간주했으므로(13:1) 고린도 교인들이 예배에서 이 은사를 지나치게 강조했다(14:18-19, 23절). 그 결과 그들의 공동체 예배가 비이성적인 것이 되었고 몸으로서 교회가 세워질 수 없었다. 바울은 이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첫째, 성령으로 말하는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이다(12:1-3). 이어서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에 대해 체험하는 것을 근거로(4-6절) 바울은 성령의 하나 됨 안에 나타나는 은사의 다양성을 강조한다(7-31절). 어떤 경우든지 그들이 드리는 예배의 모든 것은 사랑이 지배해야 한다(13:1-13).
<7월23일 토요일: 고린도전서 15-16장>
15장에서의 문제는 일부 교인들이 성도의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12절). 그들은 부활한 몸이라는 개념을 명백히 조로하고 있었다(35절). 이에 대해서 바울은 그들이 믿고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근거로(1-11절) 부활의 확실성을 역설한다(12-34절). 그의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1)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면서도 성도들의 부활은 믿지 않는 어리석음, 2) 성도들의 부활의 불가피성과 필요성, 3) 부활의 소망이 없는 자들의 행위와 삶의 무의미함.
16장에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려고 이방인 교회들에게 실제적인 연보를 거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 신자들은 바울에게 그것에 관해 질문했다. 바울은 매주 어느 정도의 돈을 따로 구별하여 두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디모데의 일정을 추가로 언급하다.
※ 고린도전서는 성경 이야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1)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부르시고, 약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에 반영된 자신의 형상을 닮을 수 있게 하셨다. 2)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부활과 또는 변화로 우리의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이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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