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4일 일요일: 갈라디아서 1-3장 >
1:1-5 인사말
이 독특한 인사말이 복음의 핵심에 초점을 맞춤으로써(4-5절) 서신의 논증을 어떻게 예고하고 있는지 주목하라.
1:6-9 거짓 교사들에 대한 저주
독자들은 이 단락이 갑작스럽게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교회에 보낸 서신들 가운데 감사와 기도가 포함되지 않은 유일한 서신이기 때문이다. 선지자의 역할을 자처한 바울은 다른 복음으로 갈라디아의 이방인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있는 자들에게(그리고 그렇게 할 다른 자들에게) 이중적인 저주를 선언한다.
1:10-2:14 – 1뷔 바울과 예루살렘 사도들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면서 복음에 대한 변호를 시작하는 것에 주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그의 사도권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직접적인 위임이었다). 바울은 전환 문장(1:10)에서 할례를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한다고 자신을 비난하는 대적자들을 논박한다. 이어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사람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계시로 받은 것임을 주장한다(11-12절). 그리고 이런 주장을 다음과 같은 3부로 구성된 연대기적 이야기를 통해 입증한다. : 1)(거짓 교사들의 복음과 대조적으로)바울의 복음과 사도권은 예루살렘에서 전적으로 독립된 것이다(13-24절). 이렇게 바울은 대적자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용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복음은 예루살렘 사도들의 복음과 일치하며 그들에게 인정받은 것이다(2:1-10, 단지 사역의 영역이 다를 뿐이다). 3) 그 일치에 대한 믿음을 깬 것은 바울이 아니라(베드로로 대표되는) 예루살렘 사도들이다(11-14절).
2:15-21 신학적 명제 제시
바울은 안디옥에서 베드로를 책망한 것을 근거로 자신의 복음에 대한 중요한 주장을 펼친다. 서신의 나머지 부분에서 논증할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의롭다함은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2) 의롭다함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얻는다(예수님은 율법 준수의 효력을 마치셨다). 3) (물론 성령을 통해)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는 새로운 의를 효과적으로 실천하게 하신다(20절).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다(21절).
3장 복음에 대한 변호
이제 바울은 자신의 복음에 대한 신학적 변증을 시작한다. 특별히 이 단원이 독자들의 성령체험에 대한 호소로 시작하고 끝나는 것에 주목하라(3:1-5). 이 첫 번째 논증의 나머지 부분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다. 이 논증의 핵심은 2:15-21의 첫 번째 두 명제를 지지하는 그리스도의 역할을 보여준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시대를 끝내시고 믿음의 시대를 여셨다. 따라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3:7-9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사는 아브라함과 같이(그리스도 예수에 대한)믿음을 가진 자들(이제는 이방인들도 포함)이다.
3:10-14 율법은 믿음이 아니라 행위에 기초한 것이다. 여기서 행위란(단지 율법의 일부가 아니라) 율법 전체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저주”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저주를 제가하시려고 죽으셨다. 이렇게 해서 이방인들은 믿음과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게 되었다.
3:15-18 여기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언약보다 훨씬 후대에 온 율법이 아브라함의 “자손”(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의왕이 체현하고, 따라서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이 받은 “약속”(약속된 성령을 통해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될 것이라는 약속)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3:19-22 그렇다면 율법을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약속이 실현될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한정하려고(말하자면, 그들을 울타리로 두르려고) 더해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율법은 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고 살릴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오직 그리스도와 성령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
<4월 25일 월요일: 갈라디아서 4-6장 >
바울은 앞에서 제시한 논증을 독자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자녀로 알고 계신데 왜 다시 종노릇 하는 상태로 돌아가려 하는가? 4:12-20절에 나타난 더 개인적이고 관계적인 성격에 주목하라. 여기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전에 자신에게 보인 신의와 그리스도께 바친 헌신을 회복하라고 호소한다.
4:21-5:12 또 한 번의 논증, 적용, 호소
4:21-27에서 바울은 3:6-4:7에서 제시한 성경의 논증으로 되돌아간다. 아브라함, 종 노릇, 자유라는 주제들을 채택하고, 창세기에서 차용한 유비를 이용하여 “율법을 행하는 것”이 종 노릇을 의미하는 반면, 그리스도와 성령은 자유를 의미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 논증에 이어 삼중적인 적용과 호소가 등장하는 것에 주목하라. 갈라디아 교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자유 있는 여인”에게 태어난 자유 있는 아들, 이삭과 같은 존재이며, 이삭처럼 종의 아들인 이스마엘, 즉 유대 그리스도인 선동자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다(4:28-31). 여기서 또다시 개인적인 성격의 호소가 등장하는 것에 주목하라.
1) 갈라디아 교인들이 할례를 받으면 율법을 지키는 것을 포함해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호소(5:1-6), 2)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스스로 버렸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기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경주자처럼 행동하고 있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통렬한 고발(5:7-12)
5:13-6:10 복음에 대한 변호 – 3부: 성령과 의
이 단원에서 바울은 2:15-21의 세 번째 명제를 논증한다. 즉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율법준수를 대체하셨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율법이 할 수 없던 것을 하실 수 있는데, 그것은 참된 의를 이루는 것이고(5:13-14, 22-23), “죄악된 본성”(육체)의 욕망들과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16-21절). 공동체의 불화를 다루는 맥락에서 이것을 언급하고 있음을 놓치지 말라(15, 26절; “죄악된 본성의 행위들” 15게 가운데 8개가 불일치의 죄라는 사실에 주목하라). 따라서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생명을 주신(24-25절) 성령에 따라 살라고 촉구한다. 바울은 6:1-10에서 이 모든 것을 매우 실제적인 문제들에 적용한다.
6:11-18 결론: 오직 십자가
바울은 이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서 또다시 거짓 교사들을 신랄하게 공격한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전체)율법을 지키지 않는다(12-13절). 이어서 갈라디아 교인들의 관심을 다시 한 번 십자가로 집중시킨다(14-15절). 마지막 축복(16절)은 15절의 “원리”에 따라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 갈라디아서는 반박하는 특성을 지닌 서신이라서 복음의 진리에 대한 기본적인 경계가 가장 분명하게 설정되어 있다. 이 서신이 없었더라면 기독교의 믿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달라졌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서신은 우리의 자유에 대한 헌장으로 기능한다.
<4월 26일 화요일: 히브리서 1-5장 >
1:1-3 서론
이 단락의 절들이 논증의 진정한 서론을 구성하고 있음을 살펴보라. 선지자들보다 우월한 아들은 만물의 후사이시다. 그는 또한 만물이 시작될 때 존재하셨다. 게다가 하나님의 영광이시며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그는 또한 현재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 그리고 죄를 정결케 하시고 이제 권위의 자리인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
하나님의 아들의 우월성
여기서 우리는 즉시 저자의 논증 방식을 접하게 된다. 그는 일련의 구약 본문들을 인용하는(1:4-14) 동시에 두 가지 시도를 한다. 즉 천사들에 대한 아들의 우월성을 입증하고, 2-3절에서 확언하는 내용을 지지하는 것이다.
저자는 첫 번째 경고를 한 후(2:1-4) 성육신의 중요성을 논증하려고 시편 8:4-6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이들은 잠시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심으로” 1) 우리와 완전히 동일하게 되실 수 있었고, 2) 고난을 통해 우리를 위한 구원을 이루셨으며, 3) 그리하여 우리를 위한 자비로운 대제사장이 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천사들보다 우월하시다.
다음으로 우리는 저자가 아들을 모세와 대조하는 것을 본다(3:1-6). 모세보다 그리스도가 우월하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시편 95:7-11을 근거로 한 권면과 경고로 이어진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모세에게 속한 사람들의 불신앙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히 3:7-19). 이 경고가 다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주제에 대한 해설로 이어지는 것을 유의해서 살펴보라(4:1-10). 첫 번째 여호수아(헬라어로 “예수”)는 하나님의 안식을 주지 못하였다. 이제 끝까지 견디는 자들이 그 안식을 누릴 것이다. 단락 전환을 위한 권면(4:11-13)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성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어서 우리는 예수님을 최후의 대제사장으로 제시하는 저자의 긴 논증을 접할 수 있다. 저자는 대제사장이신 아들의 우월성이라는 주제를 단락 전환을 위한 권면부분(4:14-16)에서 소개한다. 그는 2:17-3:1에서 주제를 택하여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단지 제사장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긍휼하심을 받게 하려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하셨다고 역설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성을 공유하셨고 모든 고난을 체험하셨기 때문이다.
저자는 5:1-10에서 시 100:1-4절의 주해와 함께 일관된 논증을 다시 시작한다. 먼저 제사장들의 인성과 의무를 강조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셨음을 강조한다. 이어서 저자는 제왕 시편 두 편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이 인성과 고난 때문에 대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음을 밝힌다. 이제 예수님은 새롭고 더 높은 반차, 즉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시다. 저자는 이 요점을 상술하기 전에 성숙하지 않은 수진자들을 책망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히 5:11-6:3).
<4월 27일 수요일: 히브리서 6-9장 >
책망은 또한 변절에 대한 경고로 이어진다(6:9-12). 그는 멜기세덱에 대한 해설을 다시 시작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은 약속을 같은 절에서 맹세로 확증하시고, 따라서 자기 약속을 절대적으로 보증하신다(6:13-20).
멜기세덱에 대한 해설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째, 저자는 창세기 이야기(창 14:18-20)에 근거하여 설명하고, 멜기세덱의 족보가 없다는 것, 그리고 레위가 더 열등한 존재라는 것이 이미 예시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히 7:1-10). 둘 째, 저자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합법적일 뿐만 아니라 아론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한다(7:11-28).
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더 우월한 성소에서 수행되고 있고(히 8:1-6),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한 새 언약에 기초하고 있다(8:7-13). 이어지는 해설에서 저자가 완전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인 동시에 우얼한 희생 제물이심을 어떻게 입증하는지 주의해서 살펴보라(9:1-10:18). 그는 옛 언약에 대해 서술한 후(9:1-10), 그리스도가 자신을 제물로 바친 희생 제사로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9:11-14), 자신의 죽음으로 새 언약의 중보가 되셨음을 논증한다(9:15-22). 이어서 자신의 논증을 요약하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의 영원하고 “단회적인”성격을 강조하면서 단락을 마무리 한다(9:23-10:18).
<4월 28일 목요일: 히브리서 10-11장>
10:22-25에서 저자의 관심이 그리스도의 확실한 사역(19-21절)에 근거한 다섯가지 “~하자”는 식의 권유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잘 살펴보라. 1)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자. 2)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붙잡자. 3)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자. 4)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이기를 폐하지 말자. 5) 서로 격려하자. 그는 고의적인 죄를 범하지 않도록 엄하게 경고한 후 끝까지 참고 견딜 것을 촉구한다(32-39절, 합 2:3-4를 인용하고 있다).
이어지는 하박국 본문에 대한 저자의 해설(히 11:1-12:3)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단락에서 저자가 실제로 말하려는 것을 놓치기 쉽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단 하나의 요점에 주목하라. 그것은 역경을 당하고 약속된 미래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뒤로 물러가 멸망하지”않는(10:39)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다. 동시에 그는 약속이 이제 실현되었고, 우리가 모두 영광스러운 미래를 기다리고 있음으로 우리와 이 성도들이 동일선 상에 있고, 그들이 우리와 함께 한다고 주장한다.
<4월 29일 금요일: 히브리서 12-13장, 요한계시록 1장>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독자들에게 고난을 참고 견딘 모범으로 예수님을 제시하는 것으로 하박국 본문에 대한 해설을 마무리 한다(12:1-3). 계속해서 저자는 고난에 교육적인 측면이 있음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그는 공동체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라고 권면한다(히 12:14-17). 두 산에 대한 유비로 단원을 마무리하면서(12:18-24) 그는 자신의 독자들을 경고하고 격려한다(12:25-29).
저자가 이러한 권면을 통해 독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지도자들에게 복종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식을 유의해서 살펴보라. 여기서 그는 여전히 그리스도와 이 그 이전에 있었던 것을 대조한다.
※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함께 불연속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히브리서는 성경 이야기에서 특별히 중요한 문서다. 이 모든 것은 유리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것이다.
요한 계시록 1장
서언이 핵심적인 세부 항목들을 어떻게 제시하는지 잘 살펴보라 요한은 곧 일어날 일에 대해서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를 받았다. 그는 이것을 “이 예언의 말씀”이라고 부르며, 신앙 공동체에서 이 말을 큰 소리로 읽는 자들과 듣는 자들에게 축복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는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그의 “계시”를 전달한다. 여기서 적절한 인사말과 송영을 사용한다.
유배 중인 요한은 자신이 독자들과 함꼐 환난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하고, 자신이 계시를 받는 장면을 자세히 진술한다(1:9-11). 그는 계시록의 남은 부분에서 자기 자신을 모든 계시를 보고 듣는 “나”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교회의 주이자 역사의 주님으로 묘사한다.
<4월 30일 토요일: 요한계시록 2-3장>
그리스도께서 일곱 교회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현재 상황을 지적하시고, 대체로 몇 가지 방식으로 권면하신다. 또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도전하시면서 장차 있을 싸움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종말론적 상급을 약속하신다. 교회의 상태는 복합적이다(어느 정도 약점과 강점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는 모든 내용을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3:10)에 비추어 서술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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