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는 주전 1100년경 몇 년 동안의 사사 시대에 하나님께 충성한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사랑은 나오미에 대한 룻과 보아스의 사랑의 배려로, 그리고 나오미와 룻에 대한 보아스의 사랑의 배려로 표현됩니다. 이 이야기는 네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면은 주제 문장으로 시작하며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독자들이 다음 장면을 예상할 수 있는 종결 문장으로 끝이 납니다. 또 각 장면들은 나오미의 텅 빈 상태(1:6-22), 소망에 대한 자각(2장), 성취를 향한 진전(3장), 그리고 상속자의 출생으로 이루어지는 가득 찬 상태(4장)를 차례로 묘사합니다.
욥기는 세계적인 문학적 유산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이 다루는 핵심 문제는 경건한 자들이 인간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행위’ 때문에 고통당할 때 하나님의 뜻, 특히 하나님의 공의를 찾으려는 분투입니다. 동시에 저자는 “지혜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욥기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1-2장 서언
4-27장 대화 – 논쟁 세 편
28장 “지혜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담론
29-41장 독백 세 편
42장 결어
<3월6일 일요일: 룻기 1-4장 >
룻기는 한 모압 여인이 하나님의 구속 이야기의 일부가 된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화자가 어떻게 전체 이야기를 시작하는지 눈여겨봅시다. 엘리멜레과 나오미와 아들들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땅을 떠나 모압으로 갑니다. 하지만 이방 땅에서 결국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들을 잃고 빈손이 되고 맙니다. 화자는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는 도입 문장(6절)으로 첫 장면의 막을 올립니다. 첫 장면의 핵심은 룻이 시어머니에게 충절을 지키고 개종하여 진정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자가 되기로 결심한데 있습니다. 4:1-22의 장면을 주목해봅시다. 고대 이스라엘 성읍의 관습에 따르면 성문에서 마을 장로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보아스와 그의 친족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앞에서 룻이 위험을 감수했듯이 보아스도 위험을 감수합니다. 결국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고, 나오미는 상속자를 얻게 됩니다. “괴로움”이 다시 “희락”이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이스라엘은 위대한 왕 “다윗”을 얻게 됩니다.
<3월 7일 월요일: 욥기 1-3장 >
욥기를 여는 이야기는 이 책의 핵심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것은 욥기의 기본적인 틀을 형성합니다, 독자들은 이후에 이어지는 변론들을 이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서두의 이야기가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1:1-5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필요한 기본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어서 욥이 시험을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6-22절) 하나님과 첫 번째 내기에서 진 사탄은 다시 욥을 시험합니다.(2:1-10) 욥의 아내가 도와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사탄은 실패합니다. 세친구들의 방문(11-13절)은 이후에 이어질 대화무대를 제공합니다.
<3월 8일 화요일: 욥기 4-6장 >
엘리바스는 “현자들”의 기본 신학을 유창하게 전개하면서 욥과의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의 연설이 비난의 어조로 시작하지는 않지만(4:1-6) 나머지 연설들을 예비하는 역할을 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보응이 확실함을 지적합니다(4:7-11). 하나님 앞에서 결백한 사람을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4:12-21). 따라서 욥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5:1-16). 또 엘리바스는 욥에게 현재의 고통을 하나님의 징계로 간주하고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을 찾으라고 촉구합니다(5:17-26). 이렇게 해서 엘리바스는 결과적으로 사탄의 편을 들게 됩니다. 자기 지혜에 대한 엘리바스의 확고한 자신감에 주목해야 합니다(5:27).
<3월 9일 수요일: 욥기 7-9장 >
욥은 자신이 앞서 탄식한 내용을 옹호하면서 친구들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자신의 무죄를 항변합니다. 마지막으로 친구들이 주지 못한 위로를 얻으려고 하나님께 직접 호소하면서(7:1-21), 다시 “어찌하여”로 시작하는 질문으로 말을 마칩니다. 빌닷은 엘리바스의 견해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며, 욥에게 임한 재앙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주장합니다(8:1-7절). 이런 주장은 전통적인 가르침(8-10절)과 자연법(11-22절)에 근거한 것입니다. 빌닷의 기본입장을 서술하는 20절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선과 악은 사람들이 처한 형편에 근거하여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9:1-10의 많은 부분이 38-39장을 예고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3월 10일 목요일: 욥기 10-13장>
욥의 친구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 앞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두고 번민합니다. 소송의 결과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욥은 자기 고민을 탄식으로 표출합니다.(10장) 소발이 마지막으로 용서와 관련해서 진실을 말하는데(11:13-20절), 불행히도 그것은 욥의 재앙이 죄의 결과(11:1-12절)임에 틀림없다는 가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의”라는 것이 때로 이렇게 가혹할 수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의 말에 분개합니다.(12:1-3) (계속 사탄의 편을 드는)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순전함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지혜에 대한 자신의 기량이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주장한 뒤에(12:4-13:12) 하나님 앞에서 소송을 제기할 것을 진지하게 고려합니다. 그것만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고통스러운 선택입니다.
<3월 11일 금요일: 욥기 14-17장>
논쟁의 두 번째 단계에서 고발자 세 사람은 모두 한 가지 주제 “악인이 당하는 현재의 고통과 최후의 운명”과 관련해서 다양한 역할을 맡습니다. 욥의 대응에는 희미하게나마 희망이 나타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꺽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악인이 항상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엘리바스는 다시 한 번 전통적 지혜에 호소합니다. 즉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악인이므로 고통을 당하는 욥도 악인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욥이 자신의 고통에 의문을 제기할 때 자동적으로 자기 입으로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고통의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욥의 유일한 소망은 하늘의 변호인에게 있습니다(16:18-21).
<3월 12일 토요일: 욥기 18-21장>
빌닷은 욥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18:1-4절). 그래서 그는 엘리바스의 말대로 (욥과 같은) 악인이 처할 비참한 운명에 주의를 환기 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실 것입니다(18:5-21절). 욥은 자기 친구들에 대해서(19:1-6절) 그리고 자기를 원수처럼 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습니다(19:7-12절) 또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탄식합니다(19:13-20절). 친구들에게 경고하기 전에 도움을 청하는 욥의 호소에는 또다시 희망의 어조가 나타납니다(21-27절). 그러나 소발은 악인들의 비참한 운명을 반복해서 언급하며 욥의 희망을 꺽어 버립니다(20장). 이제 욥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신혹히 벌하신다는 조언자들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21:7-33절) 자기 친구들에 대해서 불평합니다(21:1-6, 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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