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5일 – 11월 1일 성경통독(오바댜1장, 학개1-2장, 스가랴1-14장, 말라기1-4장, 신구약중간시대)]
포로 귀환 뒤 예언서와 신구약 중간 시대
포로시대 이후 성전 재건을 중단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 앞에 학개와 스가랴 같은 선지자들이 나타나 격려하고 나서서 성전이 회복되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이 그 정체성을 찾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정치, 경제, 종교 모든 면에서 그들이 기대했던 실질적인 회복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의 개혁과 말라기의 촉구가 이어졌지만, 이스라엘은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씀 없이 400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마침내 때가 차서 독생자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말입니다.
< 이번 주 읽기 분량 살펴보기 >
1. 오바댜_에돔을 향한 예언 오바댜서1장
예언서 중 비교적 짧은 책인 <오바댜서>에서는 이스라엘의 이웃 민족이 에돔이 심판받을 것과 이스라엘이 앞으로 구원받을 것을 다룹니다. 적어도 <오바댜>의 핵심 부분만큼은 주전 587년에 예루살렘이 점령되고 파괴당한 사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서 생겨난 듯 합니다. 이 참사가 벌어지는 동아, 또 그 이후에 이웃 민족인 에돔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자 예언자는 에돔 사람들이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을 음흉하게 대하고 이들의 불행을 기뻐했으므로(15 하반절) 이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되리라는 말씀을 받습니다. 에돔 사람들의 개입이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었는지는 에스겔서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겔25:12-14, 35:1-15) 지금은 폐허인 시온산이 언젠가 안전한 피난처가 되고 아무도 그곳을 손댈 수 없게 되리라 하면서(17절) 예언자는 얻어맞아 기가 꺾인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오바댜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스라엘이 옛 영토를 회복하게 될 것을 미리 내다봅니다.
2. 학개서_ 성전 재건과 회복을 촉구 학개서1-2장
학개란 이름의 뜻은 ‘명절에 속한’ 곧 ‘명절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 명절이 어떤 명절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학개가 전한 말씀에는 날짜가 정확하게 적혀 있는데, 그 모든 말씀을 학개가 바사 왕 다리오 1세 제2년(주전 520년)에 선포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대적인 상황은 <에스라서>에서 알 수 있습니다. 주전 538년 바사 왕 고레스는 바빌로니아에 사로잡혀 와 있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부서진 성전을 재건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스1장). 유다 사람들은 고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했지만 생존의 염려와 정치적인 어려움 때문에 일을 곧 중단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가 등장하여 성전 건축 공사를 다시 계속하게 합니다. 학개가 전한 말씀이 주로 겨냥하고 있는 대상은 바사 왕이 유다 총독으로 임명한 스룹바벨과 또 종교 지도자인 대제사장 여호수아입니다.
3. 스가랴서_ 비전과 현실 사이에서 스가랴서1-14장
예언자 학개와 마찬가지로 스가랴는 바빌로니아에서 돌아와서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유다 사람들 가운데서 활동했습니다. 스가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입니다. 스가랴의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바빌로니아에서 돌아온 제사장들 가운데 들어 있는 잇도(느12:4)와 같은 사람일 것인데, 느12:16에서는 이 사람이 한 제사장 집안의 우두머리로 등장합니다.
말씀이 임한 날짜를 알려주는 구절들(1:1, 7:1)은 주전 520-518년을 가리키는데, 이는 부서진 성전의 건축이 오랫동안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된 시기입니다. 자신이 본 환상에 대해 말하면서 스가랴는 낙담해 있는 귀환자들에게 그들의 운명에 결정적인 전환이 있을 것을 예고하고 또 모든 불의에서 돌아서라고 부르짖습니다. 스가랴는 거듭거듭 이전 예언자들의 예언과 비유를 이끌어 쓰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런 말씀으로서 스가랴는 동포들이 내적인 위기를 넘어서게 도왔습니다.
4. 말라기_ 약속의 말씀 말라기서1-4장
말라기는 ‘나의 사자’라는 뜻입니다. 3장 1절에 이런 뜻의 히브리 낱말(말라기)이 나오고, 또 옛 그리스어 번역본에서는 1:1의 ‘말라기를 통하여’, ‘그의 사자를 통하여’라고 옮겼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말씀 가운데에는 부분적으로 예언자 학개(학1:9-11, 2:16-17)를 통해 부분적으로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스9-10장; 느5:1-5; 13:23-31)를 통해 알 수 있는 상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곧 <말라기>에서는 생존을 염려하는 문제도 다루고 유다에 속하지 않은 여인들과 혼인하는 문제도 다룹니다. 유다 백성이 성전을 다시 세워놓기는 했지만, 유다는 바사의 하찮은 한 지방일 따름입니다. 다른 예언자들이 예고한 놀라운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낙담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예배는 변질되어 겉으로만 형식을 갖추었고, 하나님의 율법은 될 수 있는 대로 지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말라기는 이러한 시대에 주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5. 신구약 중간 시대_ 400백년 동안 침묵하시는 하나님
신구약 중간 시대라고 이야기하는 기간은 말라기의 예언 이후 세례 요한이 등장하기까지(혹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수태 이야기를 하기까지)입니다. 이 기간 동안 세계 역사에는 계속해서 그리스, 로마 등의 대제국들이 등장했고, 이스라엘은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위해 걱정해야 했습니다. 더욱이 말씀이 끊겼던 이 시대에는 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구세주 오심에 대해 갈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간단하게 이야기해 보면 첫 번째로 페르시아의 멸망과 그리스(헬라) 제국의 등장입니다. 페르시아는 동쪽으로 인도를 점령했지만 서쪽 유럽에 진출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강력한 도시연합국인 그리스를 정벌하기 위한 수차례 전투에서 연속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으로 그리스에게 정복당하고 맙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헬라 문화의 전도사로 자처하여 헬라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정복에 나섭니다. 그러나 전쟁 중 그만 전하사고, 그의 네명의 부하 장국들이 헬라 제국을 넷으로 나눠 다스립니다. 그 중에서도 터키와 시리아 지역(팔레스타인 북북)을 차지한 셀루시드 왕조와 이집트 지역(팔레스타인 남쪽)을 차지한 톨레미 왕조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놓고 쟁탈전을 벌입니다. 처음에는 톨레미 왕조가 득세했지만 나중에는 셀루시드 왕조가 이스라엘 전역을 차지하여 다스립니다.
헬라문화를 강요하던 셀루시드 왕조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돼지로 제사하며 성전을 모욕하고(안티오쿠스 4세), 참다못한 제사장 맛다디야와 그의 아들들의 항거로 독립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침내 셀루시드 왕조를 몰아내고, 마카비 왕조가 세워져 독립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로마가 강성하여 동쪽으로 나오면서 이스라엘은 다시 그들에게 복속되었습니다. 다행히 유다는 로마의 이집트 정벌을 도운 대가로 상당한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로마 제국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특성을 잘 이해하고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자치를 허용했습니다. 대신 치안과 조세를 위해 총곡과 수비군대를 두어 관리했습니다. 심지어는 유대인의 정서를 감안해서 주둔군 본부를 가이사랴에 두고 명절 때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치안을 유지하게 했습니다. 그나마 우상숭배라는 감정 촉발을 막기 위해 황제를 상징하는 깃발마저 달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갈릴리 북부 지역은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는 헤롯 왕가에 분양하여 다스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스라엘의 종교 생활이 성전 중심에서 회당 중심으로 바뀌었으며, 다윗 왕의 혈통은 끊어지고에서 혈통의 헤롯 왕가가 들어서 있고, 제사장 역시 아론 자손에서 어용 제사장으로 바뀌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두개파나 바리새파들은 자신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고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지킬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며 당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속세와 결별을 선언하고 메시야를 기다리던 에센파도 있었습니다.
< 25일 주일: 오바댜, 학개 말씀으로 지도자를 격려하라 >
오바댜와 학개에 관해 설명한 앞의 내용을 통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 26일 월요일: 스가랴서 1-4장 모든 민족의 구원이 되다 >
이스가랴가 본 세 번째 환상은 회복될 예루살렘 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척량줄을 든 천사가 성을 재려고 했지만 성을 재려고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열국 백성들을 그 성으로 모으셔서 그 성의 크기를 특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모으시는 이들로 더욱 확장되어 가고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부름받은 자들을 섬기는 삶을 삽니까? 헤치는 삶을 삽니까?
< 27일 화요일: 스가랴서 5-8장 금식, 어떻게 하십니까? >
금식은 우리의 소욕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할 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뤄진다면 금식까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금식을 자신의 소욕을 끊고 주님을 섬기는 도구로 이용합니까? 자신의 소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까?
< 28일 수요일: 스가랴서 9-11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공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려고 보내는 지도자는 화평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공의와 구원을 베푸실 분입니다. 군림하지 않고 겸손히 섬기실 분이십니다. 우리는 세상을 어떤 주님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화평입니까? 칼입니까?
< 29일 목요일: 스가랴서 12-14장 멍에를 짊어진 참 목자 >
오늘 본문 중 13:7의 내용을 인용하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멍에만이 우리에게 참된 쉼을 줍니다. 우리가 지고 따라야 할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하신 모습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하루가 됩시다.
< 30일 금요일: 말라기서 1-4장 세속화에서 벗어나라 >
세속화란 사람들이 하나님 없는 생각과 가치관대로 살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나의 삶의 어느 부분이 세속화되어 있는지 생각하는 하루를 보냅시다.
< 31일 토요일: 창12장, 출19장, 삼하7장, 렘31장 말씀이 감추어진 시대 >
오늘은 주어진 본문 속에 나오는 언약을 살펴보면서, 과연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어떻게 이루실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이스라엘의 마음이 되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봅시다. 기도하면서 말씀 없었던 때를 생각하고 주님을 더욱 사모하는 날이 되게 해 봅시다.
- 위 성경읽기 내용은 <두란노> 출판사의 『1년 1독 말씀 묵상 다이어리』의 내용을 참고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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