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삶의 자리를 떠나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면 신기하게도 낯선 장소에서 보냈던 순간이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본래 갖고 있던 삶의 흐름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돌아와 강렬했던 기억들을 잠재웁니다. 수양회에서 보낸 시간들이 제 내부의 장기기억저장소(영화, ‘인사이드아웃’ 참조)로 보내지기 전에 되새김질 해보려 합니다.
일단 저 개인적으로는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2013년 10월부터 교회에 나왔으니 벌써 2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솔직히 교우들의 이름과 얼굴을 다 기억하지 못했거든요. 초기에는 부부 매칭을 잘못해 몇몇 교우들께 실수를 범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제는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그리고 청년들을 떠올릴 때, ‘00 어머니, 00의 아들’ 과 같은 설명대신 이름을 뜸 들이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가족 관계도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 배정 일의 위력이지요. 또한 교우퀴즈 덕에 얼굴과 이름을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교우들의 어린 시절의 꿈, 별명 등을 살펴보며 뭔지 모를 따뜻한 감정이 찾아왔습니다. ‘000 집사님께서 지금의 내 나이 때에는 어떠셨을까’ ‘000 집사님은 용욱이 나이에 이런 별명을 갖고 계셨구나!’ 와 같은 생각을 하며 세대를 초월하여 모든 세대가 어린 시절에 공감할 수 있는 기억들이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양회를 준비하는 일에 보상을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수고가 많아요!” 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격려와 응원 감사합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한 수고보다 더 많은 격려를 받은 것 같습니다. 앞에 나가서 말하는 바람에 제가 부각 되었습니다만 사실 친교부장 최재일 집사님과 공동체 놀이를 진행한 정민규 형제님과 대부분의 일들을 함께 하였고요. 정우영 청년의 창의력도 한 몫 했고요.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시는 교역자분들과 송혜자 권사님은 말을 할 것도 없고, 봉사부장이신 곽경은 집사님 덕분에 풍성한 수양회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손수 만든 것으로 선물을 제공해주신 분들도, 돌아가는 길에 빈손으로 가지 않을 수 있게 여러 모양으로 찬조해주신 분들 덕에 넉넉하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인수인계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장준호 집사님도 빼놓을 수 없네요.
그런데 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올해 수양회를 준비하는 데 직접 도움을 주신 분들만이 감사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루터기 교회 공동체를 위해 애쓰신 분들의 수고와 지금까지 소리 없이 켜켜이 쌓여 온 시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규모에 비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기꺼이 돕는 일이 체화된 신앙의 선배님들이 계셨고, 이 공동체가 서로에 대한 두터운 믿음과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수양회를 마친 이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20여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다양한 실험을 해보며 쌓여 온 든든한 토대가 있었다는 것. 무엇보다 ‘무(無)’에서 창조하는 어려움을 겪으셨던 분들과는 달리 이미 많은 부분이 자리가 잡혀 있고, 심지어 든든한 지원군이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당연히 수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란하게 소리를 낸 저를 보며 아직은 저의 신앙이 설익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하지만 닮고 싶은 신앙의 선배들이 바로 옆에 계시니 아직 희망은 남아 있는 거겠지요? 서로서로가 웃는 모습을 실컷 볼 수 있어 행복했고, 평소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큰 몸짓들의 등장도 즐거웠습니다. 2015년 여름 수양회는 제게 핵심(core)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간증 내용이 마음에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