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사무엘기하 21-24장은 사건의 발생 순서와 무관하게 몇 개의 장면들을 모아놓은 부록이다. 세 겹의 교차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사울과 다윗의 범죄와 속죄 이야기(21:1-14; 24장)가 가장 바깥쪽에, 다윗의 용사들과 그 업적(21:15-22; 23:8-39)이 그 안쪽에, 그리고 다윗의 시 두 편(22:1-23:7)이 가장 안쪽에 배치되어 있다. 사무엘기하 22장은 시 18편과 동일하다. 다윗의 일생은 그의 대표적인 시편인 23편에 담긴 “주님이 나의 목자”시라는 고백으로 대표된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통일왕국으로 세운 강력한 목자였으나 스스로 목자로 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목자로 삼았다, 그리할 때 그는 목자를 닮은 양이 되었다.
221204 사무엘하(13) 갈등의 상처를 치유하기
[설교요약]압살롬의 난은 규모가 컸던 만큼 그로 인한 상처가 깊었고 뒷처리에도 많은 수고와 고통이 수반되었다. 다윗은 유다 지파와 관계를 회복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열두 지파를 다시 통합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시므이를 살려주었다. 므비보셋과 시므이의 진술이 불일치할 때 그것을 상세히 조사하지 않고 덮은 것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갈등이 종종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싸움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면 봉합하기 어렵다. 더 늦기 전에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다윗은 자기 마음의 상처를 관리할 줄 알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았다. 그래서 동족을 원수로 만들지 않았다.
221127 사무엘하(12) 공정한 왕
[설교요약]압살롬은 다윗 통치의 허점을 잘 파악하고 스스로를 공정한 왕으로 제시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실제로 공정한 왕이 되지는 못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군에게 예루살렘을 넘겨주고 떠난다. 전면전으로 일어날 많은 인명 피해 특히 백성의 희생을 막기 위함이었다. 반군이 예루살렘을 접수한 후 승리감에 도취된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물리치고 후새의 무모한 전략을 채택한다. 그 전략은 다윗과 함께 하는 백성은 자기 백성이 아니라는 판단에 기초한 것이었다. 공정한 왕의 판결은 백성을 향한 사랑에 기초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로 가능하다. 그러나 압살롬의 전략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고, 백성은 그의 안중에 없었다.
221120 사무엘하(11) 다윗과 압살롬
[설교요약]압살롬의 난에 관한 기록(사무엘기하 13-20장) 가운데 40% 이상은 다윗의 가정 안에서 일어난 일을 서술한다. 이것이 그 반란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압살롬이 왕이 되고자 한 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 부자간의 갈등이 있었다. 압살롬은 재판관이 되고자 했다. 그것은 암논과의 일을 공정하게 판결받지 못한 억울함의 표현이었고, 다윗 왕국의 현실적 허점에 대한 폭로였으며, 여러 가지 정치적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일이기도 했다. 그것은 결국 다윗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모든 세력을 끌어모으는 동력이 되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일국가로 일으켜 세우는 일에 전력하느라 가정을 돌보지 못해 생긴 일이 결국 이스라엘 재분열의 씨앗이 되었다.
221113 사무엘하(10) 왕이 되려 한 사람들
다윗이 모범적으로 보여준 이스라엘 왕의 직무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온 나라에 실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며 갈등을 일으킨다.
암논이 다말을 겁탈하고 극단적인 수치를 안긴 것은 그의 오빠 압살롬을 타겟으로 한 행위였다.
암논은 다윗의 맏아들이자 왕위 계승권자였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동생 압살롬을 시기하여 기선을 제압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무엘기는 압살롬이 아니라 다말의 모습을 그리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것은 사무엘기가 사람이 왕이 되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 밖에 없는 희생자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추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 책은 인간의 역사책과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221106 사무엘하(9)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지었을 때 우리는 대개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무서워한다.
죄 자체로 인해 괴로워하기보다는 그 죄가 사람들에게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며 그것을 덮으려 한다.
다윗도 그랬다.
여러 번의 회개의 기회가 있었으나, 그의 안중에 하나님은 없었고, 범죄를 덮으려 하는 가운데 그는 더 깊이 범죄의 수렁에 빠져들어갔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자.
주님이 거기 계시는 것은 죄를 찾아 벌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연약하여 죄 앞에 넘어진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함이다.
사람마다 죄에 더 취약한 부분이 있다.
그 취약점들이 죄의 위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기회가 되게 하자.
221023 사무엘하(8) 나를 위하여
[설교요약]다윗 왕국의 확장 과정을 서술하는 사무엘기하 8-12장 사이에 끼어있는 9장과 11장은 다윗이 전성기에 무슨 일을 했는지 두 가지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9장은 둘 중 긍정적 사례에 해당하는데,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특별히 보살폈다. 다윗은 어려운 시절 “나를 위하여” 수고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은혜를 갚았다. 다윗의 피난 시절 가장 큰 힘이 된 사람은 친구 요나단이었다. 그에게 다윗은 정적이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왕은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다윗과 신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다윗 역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잠재적인 정치적 위험으로 여기지 않고 믿음으로 대했다. 우리의 영성은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를 통해 드러난다.
221016 사무엘하(7) 다윗 왕국의 확장
[설교요약]
이스라엘의 영토는 대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로 지칭된다. 그러나 다윗 왕 때“하맛 어귀로부터 에시온 게벨까지” 영토가 확장되었다. 다윗 왕국의 확장 과정은 8장에
요약되어 있고, 그 중 시리아 정복 과정이 10장과 12장에 상세히 서술된다. 이 전쟁은 다윗이 시작한 것이 아니다. 암몬과 평화 공존을 의도한 다윗의 조문 사절단을 암몬이 모
욕하여 돌려보내고 시리아 제국에 속한 나라들에 지원군을 요청함으로 암몬-시리아 연합군과 다윗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사무엘기는 다윗 왕국의 확장을 나단의 신탁에서 주
신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으로 제시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주변 국가들로부터 보호하여 평화롭게 살게 하셨고, 다윗은 이웃 나라들과 공존하고자 했다. 그리 함으로 다윗
은 자신의 영토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했다.
221002 사무엘하(6) 블레셋
[설교요약]
블레셋은 본래 그리스 미케네와 크레타에 살던 백인들로 주전 12 세기 기후 난민이 되어 팔레스타인 남쪽 해안으로 이주했다.
이미 철기문명에 들어서 있었고 중앙집권적 계급사회를 유지하고 있어서 군사력 경쟁에서 이스라엘보다 앞서 있었다.
사사시대는 이스라엘의 열세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사울때부터 강화되기 시작했고 다윗은 블레셋을 이스라엘의 영토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그러나 남북으로 영토를 최대한 확장하는 중에도 블레셋을 정복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서로 갈등하면서도 광역 경제권을 이루어 협력하는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블레셋은 오늘날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우리와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함께 욕망의 희생자가 되지 말고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길!
220925 사무엘하(5) 하나님을 위하여 (삼하 7장)
[설교요약]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자 했다. 그러나 성전은 성막에 머무시고 이동하시는 하나님의 자유를 한 장소에 제한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솔로몬이 이후 그 위험성은 현실이 되어 성전이 왕권의 도구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성전을 떠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을 통해 하나님을 그의 왕궁의 주님으로 모시고자 하는 다윗의 마음을 보셨다. 마치 아이들의 어설픈 선물이나 재롱을 어른들이 기특해 하며 기쁘게 받듯이 말이다. 우리의 관심은 대개 무엇을 하느냐에 집중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그 일을 통해 맺어지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다.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성찰해야 한다. 성찰이 끝나면 모든 일이 관습이 되어버린다.